이해의 코드를 통해 본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상 - 1. 하이데거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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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0410 | Posted on April 19th, 2011 at 20:11 by DollShe | Modify

이번 시간에는 '이해'라는 요소를 통해서 본 하이데거의 사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사상은 전 후기를 통틀어 존재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존재론에서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인간의 존재이지요. 기존의 존재론에서는, 여러 특수한 존재들이 있으며, 그 존재들이 각기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다루었던 반면, 하이데거는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들이 존재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같으며, 다만 그것들이 인간의 현존재에 이르는 통로를 열어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 기존 존재론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이었습니다. 즉 그 어떤 존재론이라 할 지라도, 결국 현존재인 인간과 연결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하이데거는 이 사실에 집중에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켜 나갔지요. 현존재인 인간이 그 중심에 놓이는 의미에서의 철학 말이지요.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이 현존재인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의 시대상을 짤막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실존주의가 등장하게 된 계기 말이지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는 급속하게 파괴되었고, 기존의 상식과 윤리관을 완전히 뒤엎는 악행(홀로코스트 등)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것이 불러온 충격은 대전이 모두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또한 하이데거는 이러한 세계대전의 주역(?)인 독일인이었기에, 히틀러라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 그리고 그 히틀러와 괴벨스에 선동되어,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무작정 따르는 수동적인 독일 국민들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다만, 본인조차도 전쟁당시에는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바람에, 전후에 바로 대학 총장직을 관두는 흑역사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이데거에의 평가점수를 깍아먹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지요. 물론 철학자의 사상과 철학적 내용 자체가 어찌 연관되어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1927년에 이러한 사상을 발표하고도 그러한 확고한 자신의 사상대로 삶을 살지 않았던 측면은, 아무래도 자신의 사상의 구체적 실현에 있어서의 미흡함이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자연히 실존주의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같은 사람이 아니며(가령 히틀러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사람다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비로소 사람이라고 보는 입장인 실존주의를 필요로하게된 것입니다.(물론 하이데거가 완전한 실존주의자 그 자체는 아니지만) 하이데거는 이 실존주의 학자의 한명으로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조건을,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부터 일찍이 연구한 학자였고, 그 결과로 '의식', 그리고 '이해'의 요소를 그 중심에 놓아두게 됩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현존재인 나를 문제삼음으로써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수동적 삶, 즉 인간의 사물화(Verdinglichung)에 대한 경계였습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마치 타존재인 죽은 사물과 같이 살아갈 때는 인간이 아님을 강조했고, 이러한 삶을 소외, 인간소외(alienation)라 그는 불렀습니다. 즉, 나의 소유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의 소유권이 있을 때 나는 더이상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가령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들이 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현대인의 삶이 바로 이러한 삶을 사는 존재이지요. 가령 한국인의 대학생들을 보자면, 아무 생각도 없이, 수능점수에 맞춰 가장 좋은과에 입학하며, 아무 생각도 없이 토요일 6시만되면 남들이 트는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을 틀어서 보며, 아무 생각도 없이 남들 준비하는 공무원 준비를 하며, 아무 생각도 없이, 다른 사람의 유행을 쉽게 따릅니다. 물론 저 과정 중에 자신의 주체적 결정의식이 따른다면 저것은 소외된 삶이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저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한다기에 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이 소외된 이들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인간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떡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선 인간이 다른 사물들과 생존방식이 다름을 깨닫는데서 출발합니다. 우선 생물과 사물의 차이점을 보자면, 사물은 물리적 운동 방향을 그대로 순행하는 반면, 동물은 그것을 역행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이 있습니다. 가령 연어떼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로써 자연의 순행을 역행하는 셈이 되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생물 중에,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자연에 역행할 수 있지만, 분명히 다른 그 둘의 차이점이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의식입니다. 자기 의식이란, 인식하는 순간 순간의 것들을 이어내어, '나'라는 전체적인 존재로써 환원시킨 것인데, 인간은 이 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동물은 그럴 수 없다고 하이데거는 본 셈이지요. (이 의식은 하이데거의 스승인 후설의 노에시스-노에마 구조와 상당히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얘기는 후설의 페이지에서 하도록 하지요.)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시간에는 이 '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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